2026/02/09

재택근무하면서 잠이 더 안 온다고요? 수면 전문가가 말하는 진짜 이유와 해결법

밤 11시, 노트북을 덮고 침대에 눕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눈이 말똥말똥해요. 분명 하루 종일 일했는데, 몸은 피곤한데 머리는 잠들 생각이 없습니다. ‘내일도 출퇴근 안 하니까 좀 늦게 자도 되지…’ 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결국 새벽 1시가 넘어서야 겨우 잠이 듭니다.

혹시 이런 경험, 익숙하신가요?

재택근무를 하면서 오히려 수면의 질이 떨어졌다고 느끼는 분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출퇴근 시간이 사라지고 시간적 여유가 생겼는데, 왜 잠은 더 안 오는 걸까요. 이 글에서는 재택근무 환경에서 수면이 무너지는 구조적인 원인과, 오늘 밤부터 바로 적용할 수 있는 실질적인 수면 관리법을 정리했습니다.


한국인, 이미 만성 수면 부족 상태입니다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우리가 얼마나 잠을 못 자고 있는지부터 짚어볼 필요가 있어요.


대한수면연구학회가 발표한 ‘2024년 한국인의 수면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인의 평균 수면 시간은 6시간 58분입니다. OECD 평균인 8시간 27분과 비교하면 약 18%나 부족한 수치예요. 대한수면학회가 권장하는 성인 수면시간은 7~9시간인데, 우리는 최소 기준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는 셈이죠.


더 놀라운 건 수면에 만족하는 비율입니다. 매일 숙면을 취한다고 답한 비율은 7%에 불과했어요. 글로벌 평균(13%)의 절반 수준입니다. 그리고 숙면을 방해하는 요인 1위는 바로 ‘심리적 스트레스’(62.5%)였습니다.


재택근무자에게 이 수치가 특히 의미 있는 이유가 있어요.


재택근무가 수면을 망치는 세 가지 구조


그렇다면 왜 시간적 여유가 생겼는데 오히려 잠을 못 자게 되는 걸까요. 여기에는 우리 몸의 생체시계와 관련된 구조적인 원인이 있습니다.

경계가 사라진 일상

사무실에 출근하면 ‘일하는 나’와 ‘쉬는 나’의 경계가 물리적으로 명확합니다. 집을 나서는 순간 일이 시작되고, 집에 돌아오면 일이 끝나죠. 그런데 재택근무는 이 경계를 무너뜨립니다. 침대 옆에서 일하고, 식탁에서 회의하고, 소파에서 코드를 짭니다.


문제는 뇌가 장소에 반응한다는 겁니다. 침실에서 업무를 하면 뇌는 침대를 ‘각성 공간’으로 인식하기 시작해요. 대한수면연구학회에서도 침대는 수면과 관련된 활동만을 위한 공간으로 제한할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침대에서 이메일을 확인하는 습관이 불면의 시작일 수 있어요.


햇빛 부족과 생체시계 교란

출퇴근을 하면 적어도 하루에 두 번은 자연광에 노출됩니다. 이 자연광이 우리 뇌의 시상하부에 있는 생체시계를 맞춰주는 역할을 해요. 생체시계는 낮에 각성 호르몬을 분비하고, 밤에는 수면 호르몬인 멜라토닌을 분비하도록 조절합니다.


재택근무를 하면 하루 종일 실내에 머무르는 날이 많아져요. 햇빛 노출이 줄어들면 멜라토닌 분비 시점이 뒤로 밀리면서, 자연스럽게 취침 시간도 늦어집니다. 그렇게 조금씩 수면 리듬이 밀리다 보면, 어느 순간 새벽형 인간이 되어 있는 거예요.


블루라이트의 습격

재택근무자의 스크린 타임은 사무실 근무자보다 길어지는 경향이 있어요. 모니터 앞에서 일하고, 쉬는 시간에는 스마트폰을 보고, 퇴근 후에도 태블릿이나 노트북으로 콘텐츠를 소비하니까요.


스마트폰이나 모니터에서 나오는 블루라이트(청색광)는 뇌에 ‘아직 낮’이라는 신호를 보냅니다. 망막의 멜라놉신 함유 신경절 세포가 이 블루라이트에 반응해서 멜라토닌 분비를 억제하거든요. 연구에 따르면 취침 전 전자기기 사용은 멜라토닌 분비를 평균 1시간 이상 지연시킬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 짚고 넘어갈 게 있어요. 블루라이트 차단 안경의 효과에 대해서는 아직 논란이 있습니다. 2018년 발표된 코크란 리뷰에 따르면 블루라이트 차단 렌즈가 수면이나 안구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근거가 충분하지 않았어요. 다만 야간에 강한 블루라이트 노출이 수면 리듬에 영향을 준다는 점은 여러 연구에서 일관되게 보고되고 있으니, 안경보다는 스크린 사용 자체를 줄이는 것이 더 확실한 방법입니다.


오늘 밤부터 시작하는 수면 위생 실천법

’수면 위생(Sleep Hygiene)’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거창한 게 아니라, 잠을 잘 자기 위한 생활 습관을 뜻하는 의학 용어예요. 대한수면연구학회에서 권장하는 수면 위생 지침을 바탕으로, 재택근무 환경에 맞게 정리해봤습니다.


기상 시간을 고정하세요

많은 분들이 취침 시간을 맞추려고 하는데, 사실 더 중요한 건 기상 시간입니다. 아무리 전날 밤에 잠을 못 잤더라도, 같은 시간에 일어나는 것이 생체시계를 안정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에요. 주말에 몰아서 자는 습관도 생체시계를 교란시킵니다. 대학내일20대연구소의 2025년 수면 인식 조사에서도 평일 평균 수면시간은 6.8시간, 주말은 8.0시간으로 나타났는데, 이 격차 자체가 ’사회적 시차(social jet lag)’를 만들어내요.


오전에 15분, 밖에 나가세요

기상 후 가능한 빨리 자연광에 노출되는 게 좋습니다. 꼭 운동을 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베란다에 나가서 커피 한 잔을 마시거나, 동네를 한 바퀴 돌면 됩니다. 햇빛이 망막을 통해 생체시계에 ‘아침이야’라는 신호를 보내고, 이 신호가 약 15시간 뒤에 자연스러운 졸음으로 이어집니다.


업무 공간과 수면 공간을 분리하세요

원룸이라 물리적 분리가 어렵다면, 최소한 상징적으로라도 구분을 만들어보세요. 일할 때는 책상 앞에, 잘 때는 침대에서. 이 단순한 규칙만으로도 뇌가 장소와 행동을 연결짓는 방식이 달라집니다.


퇴근 루틴을 만드세요

사무실에서는 퇴근이라는 물리적 행위가 ‘일 끝’이라는 신호를 줍니다. 재택근무에서는 이 신호를 직접 만들어야 해요. 특정 시간에 노트북을 덮고, 가벼운 산책을 하거나 샤워를 하는 식으로요. 이런 루틴이 뇌에 ‘이제 쉬어도 돼’라는 전환 신호를 줍니다.


취침 1시간 전, 스크린을 끄세요

모니터, 스마트폰, 태블릿 등 전자기기는 취침 최소 1시간 전에 내려놓는 것이 좋습니다. 대신 종이책을 읽거나, 가벼운 스트레칭, 명상 같은 활동이 수면 전환에 도움이 돼요. 대한수면연구학회에서는 잠이 오지 않을 때 침대에서 억지로 자려 하지 말고, 침대에서 나와 가벼운 활동을 하다가 졸릴 때 다시 눕는 것을 권장합니다.


침실 환경을 점검하세요

적정 침실 온도는 18~22℃, 습도는 40~60%입니다. 조명은 가능한 어둡게, 소음이 있다면 백색소음기나 귀마개를 활용해보세요. 이런 환경적 요소들이 수면의 질에 생각보다 큰 영향을 미칩니다.


그래도 잠이 안 온다면


위의 방법들을 2~3주 정도 꾸준히 실천했는데도 개선이 없다면, 수면장애를 의심해볼 필요가 있어요. 성인의 약 60%가 수면 질환을 앓고 있지만, 전문 의료진에게 상담한 비율은 6%에 불과하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요즘은 병원 방문 없이도 수면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들이 있더라고요. KAIST 김재경 교수 연구팀이 삼성서울병원과 공동 개발한 ‘SLEEPS’라는 알고리즘은 간단한 9개 질문만으로 불면증, 수면무호흡증 등 세 가지 수면 질환의 위험도를 약 90% 정확도로 예측할 수 있다고 합니다. Sleep-Math.com에서 무료로 확인해볼 수 있어요.


스마트워치나 수면 추적 앱을 활용해서 자신의 수면 패턴을 객관적으로 확인해보는 것도 좋은 시작입니다. 삼성 갤럭시워치의 수면 코칭 기능이나 애플워치의 수면 추적 기능처럼, 일상에서 손쉽게 수면 데이터를 쌓고 패턴을 분석해주는 도구들이 있더라고요. 데이터를 보면 ‘체감’과 ‘실제’가 다르다는 걸 알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잠은 낭비가 아니라 투자입니다

재택근무의 가장 큰 장점은 시간을 유연하게 쓸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 유연함이 오히려 수면을 갉아먹고 있다면, 생산성의 근본이 흔들리는 셈이죠.


수면장애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 전국적으로 약 11조 원에 달한다는 국회 토론회 발표가 있었어요. 개인 차원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수면의 질이 떨어지면 집중력, 판단력, 감정 조절 능력이 모두 저하되고, 결국 일의 효율이 눈에 띄게 줄어듭니다.


오늘 밤, 딱 한 가지만 바꿔보세요. 기상 시간을 고정하든, 취침 전 스마트폰을 내려놓든, 아침 산책을 시작하든. 작은 변화 하나가 내일 아침의 컨디션을 바꾸고, 그 컨디션이 하루의 흐름을 바꿔줄 겁니다.


잘 자는 것만큼 확실한 자기 관리는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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