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일을 건강하게 먹으려고 챙기는 건데, 혹시 농약까지 함께 먹고 있는 건 아닐까요?
마트에서 예쁘게 진열된 딸기를 집어 들면서도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이거 물로 대충 헹궈도 괜찮은 걸까?" 특히 아이가 있는 가정이라면 이 고민은 더 깊어지죠. 과일 껍질째 먹는 게 영양에 좋다는 건 알지만, 잔류 농약이 걸려서 매번 껍질을 깎게 됩니다.
이 글에서는 매년 미국 농무부(USDA) 데이터를 분석해 발표되는 EWG(Environmental Working Group)의 '더티 더즌(Dirty Dozen)' 목록을 기반으로 농약 잔류가 많은 과일과 채소 순위를 정리하고, 한국 식약처 연구 결과까지 반영한 과학적인 세척 방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 목차
잔류 농약, 왜 신경 써야 할까?
먼저 오해를 바로잡겠습니다. 농약이 검출됐다고 해서 바로 위험한 건 아닙니다. 한국의 식품의약품안전처, 미국의 USDA 모두 잔류 농약 허용 기준을 설정해서 관리하고 있고, 실제로 USDA 검사에서 99% 이상의 농산물이 안전 기준 이하로 나옵니다.
그런데 문제는 장기간 저용량 노출입니다. 농약 성분 중에는 호르몬 교란, 신경계 손상, 발암 가능성이 지적되는 물질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특히 성장기 아이들의 경우 뇌와 신경계가 완전히 발달하지 않은 상태여서 성인보다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과일을 안 먹는 건 답이 아닙니다. 미국 CDC를 비롯한 전문 기관들은 한목소리로 "농약이 있는 과일이라도 안 먹는 것보다 먹는 게 훨씬 낫다"고 말합니다. 핵심은 어떤 과일에 농약이 많은지 알고, 제대로 씻어 먹는 것이죠.
'더티 더즌' — 농약 잔류가 많은 과일·채소 12종
EWG는 매년 USDA의 농산물 잔류 농약 데이터(약 53,000개 샘플, 47종 분석)를 기반으로 '더티 더즌' 목록을 발표하고 있습니다. 해마다 순위는 소폭 변동되지만,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는 품목은 거의 일정합니다.
더티 더즌 주요 순위
| 순위 | 품목 | 주요 특징 |
|---|---|---|
| 1 | 시금치 | 무게 대비 잔류 농약량이 전체 농산물 중 가장 많음. 퍼메트린(유럽에서 작물 사용 금지된 신경독성 살충제) 검출 |
| 2 | 딸기 | 수년간 부동의 1~2위. 샘플당 평균 4종 이상 농약 검출 |
| 3 | 케일·콜라드·겨자잎 | 한 샘플에서 최대 21종의 서로 다른 농약이 검출된 사례 |
| 4 | 포도 | 얇은 껍질 때문에 농약이 내부까지 침투. 세척 후에도 잔류 가능성 |
| 5 | 복숭아 | 59종의 서로 다른 농약 검출. 65% 이상에서 4종 이상 농약 동시 잔류 |
| 6 | 체리 | 지속적으로 더티 더즌에 이름을 올리는 과일 |
| 7 | 천도복숭아 | 복숭아와 유사한 농약 잔류 패턴 |
| 8 | 배 | 95%의 샘플에서 1종 이상 농약 검출. 살균제·살충제가 주요 성분 |
| 9 | 사과 | 60%에서 디페닐아민(저장 시 변색 방지용) 검출. 왁스 코팅과 함께 농약이 고착되는 구조 |
| 10 | 블랙베리 | 93%에서 농약 검출, 총 48종 농약 발견 |
| 11 | 블루베리 | 90%의 샘플에서 농약 검출. 크기가 작아 꼼꼼한 세척이 어려움 |
| 12 | 감자 | 90%에서 클로르프로팜(EU 금지 성분, 발아 억제제) 검출 |
한국에서 특히 주의할 과일은?
위 목록은 미국 데이터 기준이지만, 한국에서도 특히 주의가 필요한 과일이 있습니다. 딸기, 사과, 포도, 복숭아는 한국인이 자주 먹는 과일이면서 동시에 더티 더즌 상위권에 포진해 있습니다.
딸기는 한국에서 겨울~봄 시즌에 소비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과일이고, 사과와 포도는 사시사철 식탁에 오르죠. 이 과일들은 세척에 특히 신경을 쓸 필요가 있습니다.
반대로, 농약 걱정이 적은 과일은?
EWG는 '클린 피프틴(Clean Fifteen)'이라는 목록도 함께 발표합니다. 이 목록에 있는 과일·채소는 일반 재배 제품을 사도 잔류 농약 걱정이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약 60%의 샘플에서 농약이 아예 검출되지 않았습니다.
클린 피프틴 목록
| 순위 | 품목 | 순위 | 품목 |
|---|---|---|---|
| 1 | 파인애플 | 9 | 수박 |
| 2 | 스위트콘(옥수수) | 10 | 콜리플라워 |
| 3 | 아보카도 | 11 | 바나나 |
| 4 | 파파야 | 12 | 망고 |
| 5 | 양파 | 13 | 당근 |
| 6 | 냉동 완두콩 | 14 | 버섯 |
| 7 | 아스파라거스 | 15 | 키위 |
| 8 | 양배추 |
두꺼운 껍질이 있거나(파인애플, 아보카도, 바나나, 수박), 껍질을 벗겨 먹는 과일들이 대부분입니다. 유기농이 부담스러울 때는 이 목록의 과일·채소를 일반 재배로 구매하는 것이 합리적인 전략입니다.
농약 제거, 어떻게 씻어야 진짜 효과가 있을까?
여기서부터가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인터넷에는 "식초물에 담가라", "베이킹소다가 최고다", "소금물이 답이다" 등 온갖 정보가 넘쳐나는데, 실제 연구 결과는 조금 다릅니다.
식약처의 결론: 물 세척만으로도 충분하다
한국 식품의약품안전처는 깻잎과 상추에 농약을 처리한 뒤, 다양한 방법(수돗물, 식초액, 소다액, 밀가루액, 녹차액)으로 세척했을 때의 잔류 농약 제거율을 비교 실험했습니다.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세척 방법 간에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식약처는 오히려 소금이나 식초가 영양소를 파괴할 수 있어, 깨끗한 물로 여러 번 세척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고 권고합니다.
그런데 베이킹소다는 효과가 있다는 연구도 있는데?
맞습니다. 미국 매사추세츠대 연구팀의 실험에서는 베이킹소다 용액(물 2컵당 1티스푼)에 사과를 12~15분간 담갔을 때, 표면 농약(티아벤다졸, 포스메트 등)의 80% 이상이 제거되었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또한 한국의 보건환경연구원이 감귤류를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에서는 세척 효과가 이렇게 나왔습니다.
| 세척 방법 | 농약 제거율 |
|---|---|
| 물 세척 | 22.4% |
| 2% 베이킹소다 용액 | 38.4% |
| 0.2% 중성세제 용액 | 43.6% |
다만 여기서 핵심은 '담금 + 문지름 + 헹굼'의 조합이라는 점입니다. 어떤 용액을 쓰느냐보다, 충분한 시간 동안 담그고 물리적으로 문질러 씻은 뒤 흐르는 물로 헹구는 과정 자체가 더 중요합니다.
하지만 고려대 이광렬 화학과 교수는 가정에서 흔히 쓰는 수준의 식초나 베이킹소다 농도로는 실질적인 농약 제거 효과가 미미하다고 지적하기도 합니다. 연구에서 효과가 나타난 농도(10% 이상)와 가정에서 실제 사용하는 농도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결론은?
가장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세척법은 '담금 → 문지름 → 흐르는 물 헹굼'의 3단계입니다.
1단계 — 물에 담그기
과일을 깨끗한 물에 1~5분간 담급니다. 이 과정에서 표면의 수용성 농약 성분이 물에 녹아 나옵니다.
2단계 — 손으로 문질러 씻기
담근 상태에서 손으로 부드럽게 문질러 줍니다. 이 물리적 자극이 농약 제거에 큰 역할을 합니다.
3단계 — 흐르는 물에 헹구기
마지막으로 30초 이상 흐르는 수돗물에 깨끗이 헹궈 마무리합니다.
과일별 맞춤 세척 가이드
과일마다 구조와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세척법도 조금씩 달라야 합니다. 식약처 권고와 전문가 의견을 종합했습니다.
🍓 딸기
딸기는 껍질이 얇고 표면이 울퉁불퉁해서 농약이 잔류하기 쉬운 구조입니다. 물에 1분간 담근 뒤 흐르는 물에 30초 정도 씻어주면 됩니다. 꼭지를 먼저 떼지 마세요. 꼭지를 떼면 그 부분으로 물과 함께 농약이 과육 안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세척 후에 꼭지를 떼는 것이 올바른 순서입니다. 너무 오래 담가두면 비타민 손실이 크고 물러지니 주의하세요.
🍎 사과
사과는 표면에 왁스가 코팅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 농약이 함께 고착되어 있습니다. 흐르는 물에서 스펀지나 천으로 꼼꼼히 문질러 닦아주세요. 꼭지 부분의 움푹 들어간 곳에 농약이 고이기 쉬우니 이 부분은 칼로 도려내는 것이 좋습니다. 껍질에 식이섬유와 항산화 성분이 풍부하니, 제대로 씻으면 껍질째 먹는 것이 영양적으로 유리합니다.
🍇 포도
송이 사이사이에 농약이 숨어 있기 때문에 세척이 까다롭습니다. 송이째 물에 1~2분 담근 뒤, 알갱이를 하나씩 떼어내면서 흐르는 물에 씻어주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밀가루나 베이킹소다를 푼 물에 담갔다가 씻으면 표면의 이물질 제거에 도움이 됩니다. 포도는 껍질이 얇아 농약이 내부까지 침투할 수 있으므로 세척에 특히 신경 써야 합니다.
🍑 복숭아
보송보송한 솜털 사이에 농약이 들러붙기 쉽습니다. 물에 담근 뒤 표면을 손으로 부드럽게 문질러가며 씻어주세요. 솜털이 거슬린다면 깨끗한 천으로 닦아내도 좋습니다.
🫐 블루베리·블랙베리
크기가 작고 다닥다닥 붙어 있어 꼼꼼한 세척이 어렵습니다. 체에 담아 흐르는 물 아래에서 손으로 흔들면서 골고루 물이 닿도록 해주세요. 미지근한 물에 잠깐 담갔다 씻으면 표면 이물질 제거에 더 효과적입니다.
🥬 배추·깻잎 등 잎채소
식약처에 따르면 잎채소는 5분간 충분히 물에 담갔다가 흐르는 물에 앞뒤를 뒤집으며 씻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배추와 양배추는 겉잎 2~3장을 떼어내면 내부 잔류 농약이 크게 줄어듭니다.
유기농이면 안심할 수 있을까?
유기농 농산물은 합성 농약 사용이 금지되어 있어 잔류 농약 수준이 일반 재배에 비해 현저히 낮습니다. 하지만 완전히 "0"은 아닙니다. 주변 농지에서의 비산 오염이나 토양 잔류 성분 등이 미량 검출될 수 있습니다.
합리적인 접근법은 이렇습니다.
더티 더즌에 해당하는 과일(딸기, 사과, 포도, 복숭아 등)은 가능하면 유기농으로 구매하고, 클린 피프틴에 해당하는 과일·채소(파인애플, 아보카도, 양파, 바나나 등)는 일반 재배로 구매해도 괜찮습니다. 이렇게 하면 장바구니 비용을 크게 늘리지 않으면서도 농약 노출을 효과적으로 줄일 수 있습니다.
냉동 유기농 과일도 좋은 대안입니다. 신선 유기농보다 저렴한 경우가 많고, 영양소도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핵심 정리
과일과 채소는 건강한 식단의 핵심입니다. 잔류 농약이 걱정된다고 섭취를 줄이는 것은 오히려 건강에 역효과를 줍니다. 중요한 것은 알고 먹는 것입니다.
기억해야 할 세 가지
첫째, 딸기·사과·포도·복숭아처럼 더티 더즌 상위 과일은 세척에 특히 신경 쓰고, 예산이 허락하면 유기농을 선택하세요.
둘째, 세척은 '담금(1~5분) → 문지름 → 흐르는 물 헹굼(30초 이상)' 3단계를 지키면 대부분의 잔류 농약은 효과적으로 제거됩니다.
셋째, 파인애플·바나나·아보카도처럼 클린 피프틴 과일은 일반 재배로 구매해도 농약 걱정이 적으니, 여기서 절약한 예산을 더티 더즌 유기농에 투자하세요.
과학적 세척법은 복잡하지 않습니다. 오늘 저녁 과일을 씻을 때부터 한번 적용해보시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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